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일 서울 영등포구 어펜딕스에서 열린 '국내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한 일반투자자 간담회'에 참석해 투자자 의견을 메모하기 위해 메모장을 꺼내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배임죄 개정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언급했다.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추진한 이후 ‘기업 달래기’ 차원에서 배임죄 완화 카드를 계속 꺼내는 것이다. 하지만 재계에선 ‘투기 자본 먹튀 조장법’이 될 수 있는 상법 개정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사안마다 좌·우 클릭을 넘나드는 이 대표의 행보에 갈팡질팡하는 모습도 감지된다.
20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국내 주식 투자자들을 만난 이 대표는 “배임죄로 수사, 기소, 처벌받는 문제에 대해 공론화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검찰이 심심하면 기업을 내사해서 ‘배임죄로 한 번 조사해볼까’ 이러면 경영이 되겠느냐. 죄가 되든 말든 기소하고 재판을 몇 년씩 받으면 회사 망한다”면서 “삼성전자가 글고 있는 것 같다. 불행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사 충실 의무가 주주에게 확대되는데, 이 경우 수시로 의사 결정할 때마다 고발과 수사를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며 “그러면 (기업들이)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할까”라고 되물었다. 상법 개정으로 주주의 권리가 강화되는 대신 고발 남발 우려가 생길 수 있는 만큼, 배임죄 완화 부분은 일반 투자자들도 이해하고 수용해 달라는 의미다.
이 대표가 배임죄 완화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1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 판단에 배임죄를 적용하지 않도록 배임죄 폐지까지 열어 놓고 검토하겠다”고 말한데 이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심 선고가 있던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검찰권 남용의 수단이 되고 있는 배임죄 문제는 신중하게 한 번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대표가 연일 배임죄 개정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상법 개정과 맞물려 국회 논의가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이 상법 개정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을 비롯해 정부와 여당 곳곳에선 배임죄 폐지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왔기 때문이다. 대장동·백현동 개발 의혹과 관련, 배임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는 대법원 판례인 ‘명백한 고의’가 입증되는 선을 기준으로 형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다만 경제계의 입장은 명확하다. 배임죄 폐지가 숙원이긴 하지만, 경영권 전반을 뒤흔들 수 있는 상법 개정 시도 자체도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주주들의 이해관계가 다양한 상황에서 기업 경영이 자칫 ‘사법 리스크’에 발목 잡힐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당 또한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은 경영권 침해는 물론, 이로 인한 소액주주의 피해까지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주주 이익 보호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측은 “배임죄 개정은 이 대표의 오랜 뜻”이라고 말하지만, 본인이 ‘사법 리스크’ 늪에 빠진 상황에서 기업의 경영권 확보 문제를 이 대표 자신의 검찰 압박용으로 쓰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 대표의 행보에 갈피를 못 잡겠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투자소득세는 폐지하자면서 가상자산 과세 유예에는 반대하고, 상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배임죄는 완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당내 교통정리도 마무리가 안 된 만큼, 배임죄 개정 논의가 궤도에 오르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편 이 대표는 21일 전국상인연합회와 간담회를 갖고 수원 영동시장을 방문하는 등 민생·경제 행보를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