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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이후 최악 재앙…러, 피난민에 포격까지”

■카호우카 댐 폭발 후폭풍

강 범람에 석유시설·농장 침수

농약 등 오염물질 하류로 내려가

후유증 수십년 간 지속 가능성

주민 4만2000여명 위험 처해

우크라·러 '네 탓 공방' 이어가

美 "배후 단정못해" 신중론에도

국제사회 전반 러 소행에 무게

6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에서 구호대원들이 주민들을 보트에 태워 이동시키고 있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의 카호우카댐 폭발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체르노빌 원전 사태 이후 최악의 환경적 재앙이라는 평가까지 나오는 가운데 러시아는 피난민들에게 포격까지 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네 탓 공방을 이어갔으며 미국은 “배후를 단정할 수 없다”며 신중한 입장이지만 국제사회는 러시아 소행이라는 데 무게를 싣고 있다.

6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의 오스타프 세메라크 전 환경부 장관은 영국 가디언에 “강이 범람하면서 주변 석유 시설과 농장 등이 침수돼 하류는 농약과 석유제품 등으로 오염됐을 수 있고, 오염 물질은 흑해까지 내려갈 것”이라며 “이번 사태는 1986년 체르노빌 참사 이후 최악의 환경적 재앙”이라고 밝혔다. 앞서 이날 러시아가 점령 중인 헤르손주 드니프로강의 카호우카댐이 파괴됐다. 댐의 저수량은 18㎦로, 이는 미국 그레이트솔트호에 맞먹는 규모이며 한국 충주호의 6.7배에 달한다.

가디언은 후유증이 수십 년간 지속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무엇보다 강을 따라 매설된 지뢰 수만 개가 물과 함께 떠내려갔다. 카호우카호수의 물을 냉각수로 써온 자포리자 원전도 문제다. 자체 비상용 물탱크가 있기 때문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라파엘 그로시 사무총장은 “현재로서 원전에 즉각적 위험은 없다”고 말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인근 지역의 식수와 농업용수 부족도 불가피하다.

빅토리야 리트비노바 우크라이나 검찰부총장은 홍수로 대피해야 하는 주민이 드니프로강 서쪽의 우크라이나 통제 지역 1만 7000명과 러시아 통제 지역 2만 5000명 등 총 4만 2000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는 재난 구호 자선 단체 글로벌임파워먼트미션의 앤드루 네그리치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홍수가 아니라 강 건너편에서 포격을 가하는 러시아인”이라고 토로했다. 사망자 수는 집계되지 않았지만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정책조정관은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노바 카호우카의 친러 행정부 수장 블라디미르 레온티예프는 “최소 7명의 주민이 실종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서로에게 화살을 돌렸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고의적인 전쟁범죄를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제네바협약은 고의적인 댐 폭파를 전범으로 규정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댐 폭발은 러시아의 테러 행위”라며 “댐이 터졌지만 우리가 영토를 수복하는 데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서방으로부터 상당한 규모의 미국산 F-16 전투기 지원을 약속받았다”고 전했다.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대반격에 나서면서 러시아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댐을 폭파시켰다고 맞받아쳤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측의 고의적인 사보타주(비밀 파괴 공작)”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일단 공식적으로는 신중한 모습이다. 커비 조정관은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자 우크라이나와 협력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NBC뉴스는 복수의 미국 관리 등을 인용해 미 정보 당국이 배후로 러시아를 지목했다고 보도했으며 로버트 우드 유엔 주재 미국 부대사는 “우크라이나가 댐을 폭파하고 자국민을 해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언급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유럽연합(EU) 등도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태규 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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